[예술의 전당]존재하는 것들을 그저 존재하도록, 로즈 와일리전

최종 수정일: 6월 8일




한동안 나는 치열한 고민과 한恨, 또는 아픈 역사가 스며든 작품들만을 찾아다녔던 것만 같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가치들만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다. 살을 에는 추위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부치는 꼴 같았다. 로즈의 그림들이 나에게 조그마한 봄처럼 다가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d Painting_ Bird, Lemur, & Elephant, 2016, Rose Wylie, artys


로즈 와일리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네'였다. 무심한 터치와 자칫 성의없게 보이는 그림들, 가지런히 두발을 모으고 그림 앞에서 상징과 은유를 곱씹을 의욕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로즈의 그림들이 길게 들어선 회랑을 맞이하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녀의 그림은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듯 감상하는 것이 더욱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을 내려놓으면 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반드시 먹어치워야하는 부담스러운 치킨 한 마리가 아니라, 세트메뉴에 서비스로 딸려온 치킨 텐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미술, 예술 그 고상한 키워드들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에 대한 잠시 동안의 해방, 말라버린 감성과 감정을 채우는, 보다 ‘인간적인' 뉘앙스들의 파티와 닮았다.


문득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하루 동안 수없이 지나가는 이미지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이렇지 않을까. 재현이 의미를 갖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다시 구성되어야한다. 물론 ‘다시 구성한다'에 대한 완벽함의 기준은 서로 조금씩 다르겠지. 그녀의 과감한 터치와 단순화를 싫어하는 고상한 관람객도 많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형상을 구체화하는 스타일이다. 동시에 작업에 대한 모든 것을 오로지 캔버스 안에서 표현해 내고자 하는 충실한 이야기 꾼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과감함과 소탈함이 퍽 즐거웠다.


Cuban Scene, Smoke, 2016, Rose Wylie, 예술의 전당 웹진


로즈의 그림들은 한편의 시집과 닮았다. 모든 시는 서정이듯 모든 회화는 표현이고 형상이다. 시집이 그 자체로 서사를 품고 있는 것과 같이 로즈의 작업들은 회랑 안에서 독특한 서사와 시선을 이루며 선율을 읊는다. 물론 로즈가 이를 의도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단지 캔버스와 캔버스 사이를 매우고 있는 하모니, 호흡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Black Cat and Black Bird, 2020, Rose Wylie, weathernews


그녀에겐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재인 듯하다. 평범한 거리, 어제 본 영화, 자그마한 동물들과 당찬 소녀들이 그녀의 주된 뮤즈들이다. 그것들이 모두 로즈의 언어로 해석되고 다시 창조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언젠가 꿈속에서 본 강아지와 집, 담벼락에 앉은 새를 바라보는 귀여운 고양이, 스쳐지나갔던 영화의 한 장면, 당차게 세상을 가로지는 Scissor girl, 동화속 왕자님과 공주님, 머리속에 떠오르는 형상 하나. 그 모든 것들을 로즈는 날 것으로 표현하고자한다.



 


Sissor Girl, 2017, Rose Wylie


그래서인지 그녀에겐 ~주의(또는 이즘, ~ism)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Hullo와 Sissor 시리즈는 분명히 페미니즘적인 향이 짙게 나타나 있지만, 그녀는 어디에서도 페미니즘을 명시적으로 웅변하지 않는다. 로즈는 그저 당차게 다리를 뻗고 앞으로 내달리는 금발의 여성 이미지를 키치하게 그려낼 뿐이다.


Six Hullo Girls, 2017, Rose Wylie


동시에 그녀의 몇몇 작품에는 자칫 잘못 이해될 수 있는 요소가 존재 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시선마저도 애써 고치려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80여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객체들에 대한 저마다의 특징적인 요소일 뿐이다. 로즈는 캔버스 안에서 누구도 옹호하지 않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한다.


나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말 중에서도 ‘어떤 표어가 걸려 있는 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사회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정확한 인용이 아님을 미리 말한다, 정확한 인용문은 휴머니즘과 폭력 참조) 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로즈는 마치 이 말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존재하는 것들을 어느 방향이든 부정, 긍정하지 않은 채 존재하게 함으로써 대상과 세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들은 우리의 역사임과 동시에 특징이고 고유함이다. 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다른 이즘(ism)들에 비해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고할 길을 보다 넓게 열어주는 것 같아 특히 감명 깊었다.


그녀는 스스로 나이가 아닌 작품으로 기억되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회화적 논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라는 주체성엔 로즈의 나이도 당연히 포함된다. 물론 그렇다고 로즈의 나이가 작품 세계 전체를 대변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 또한 주요한 속성으로써 보다 총체적인 내러티브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는 갑작스레 포근해진 날씨덕에 사뭇 낯설었지만, 그렇기에 로즈의 세계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존재로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본 콘텐츠는 철저히 비평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콘텐츠에 사용된 표현과 묘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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