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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컬러 픽쳐스, 마일즈 알드리지


마일즈 알드리지 Miles Aldridge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알드리지 사진전을 보기 까지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매우 낯설어했다. 나에게 사진은 어디까지나 사진은 재현에 영역에 있었고 그 매체가 지닌 힘은 포착과 조명照明에 있다고만 생각했다. 이 사진이라는 매체는 현대로 올수록 역설적이게도 회화스러움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 깊이에 차이가 있다고 섣불리 단정지었을지도 모른다.


알드리지 전은 내 관점을 조금은 바꾸어준 매개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뜻이 알드리지가 광고 카피처럼 '컬러의 제왕'이라거나, 가장 뛰어난 동시대 사진 작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사진이라는 매체, 나아가 관람의 영역에서 얼마나 부족했는지, 동시에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Section 2nd/4th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은 총 8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다. 섹션을 이루는 모든 작업들은 알드리지가 얼마나 색체에 대해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지를 가감없이 느낄 수 있도록 가득 차 있다. 작업 자체로 어떠한 의미론적인 복잡한 감상이나 생각을 떠올릴 필요없이 우리가 감탄 할 수 있을만한,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작업으로 채워져 있다.



Miles Aldridge – A Family Portrait #13, 2011, CCOC 2022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은 그의 2011년작 A Family Protrait #13 이었다. 밝은 녹색의 원피스를 입은 여인과 청록빛이 감도는 더블코트, 약간의 푸른 치마를 입은 아이가 연두 빛이 감도는 의자에 앉아 있다. 뒤로는 탁한 녹빛이 감도는 분수가 펼쳐져 있다. 알드리지는 본 장면에서 초록이라는 색채적 통일성을 지키면서도 각각의 녹색이 어색하거나 과하다거나 하는 인상을 주지 않고 모두 개성적이면서 동시에 조화로운 상을 구축하도록 이를 배치, 조명했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각각의 녹색이 앉아 있는 의자의 녹색과 구분되면서도 단색의 호수를 아플라로 사용해 이 둘을 평면의 공간에 고정시킨다. 동시에 그림자는 고정된 상을 지지하는 받침으로 작용한다.


인물의 행동에는 약간의 익살스러움이 담겨 있다. 작업물 내에서 오른쪽의 여성은 왼쪽 아이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어른스럽게 화장을 하고 싶어하고, 어머니는 마치 아이처럼 초콜릿-바닐라 소프트콘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아이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 바로 아래 음영이 진 구역이 대비되는데, 이는 어머니가 쥐고 있는 소프트콘의 색감과 비선형적인 대칭을 이룬다. 이 부분은 알드리지가 Section 2, Heroine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잘 나타내는 요소들이지만, 주제의식을 거둬내더라도 녹-녹-녹의 조화에 이어 명암의 대비 자체로만 보아도 매우 아름답고 조화롭다.


Home Works #1, 2008


Home Works #3, 2008

그 다음은 Section 4, G-Rated에서 만난 Home Works 연작이다. G-Rated는 알드리지가 조명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섹션 중 하나이다. 비비드하고 레트로한 컬러로 뒤덮힌 초현실적인 주방에서 한껏 멋을 낸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집안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연작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무표정에는 지루함, 씁쓸함, 슬픔, 우울 등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알드리지는 앞선 섹션에서부터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된 성역할과 관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실존하는 인간존재로서의 여성을 조명한다. Home Works 연작 또한 '집'이라는 그녀의 생활공간이자 일터, 그리고 그녀가 하루 낮 동안 지키고 있어야하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부여된 성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여성들을 조명하고 있다. 한껏 과장된 색감의 인테리어와 메이크업은 그녀들의 무표정과 힘 없는 동세와 극명히 대비되며 알드리지가 꾸준히 조명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맺으며, Section R-Rated

R-Rated 섹션은 앞선 알드리지의 주제의식과 작업을 대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능숙함이 드러나는 섹션이다. 물론 누드라는 표현방식을 사용하여 굉장히 직설적으로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기에 세련되었다거나 독특하다는 감상을 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누드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주제의식을 오히려 더 흐리게하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난쟁이 남자를 들어올리는 당찬 여성과 그 구도, 해부학적 고찰과 실험적인 시도들은 이전 섹션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을 풍겨온다.


사실 알드리지가 서 있는 경계는 굉장히 모호하다. 그는 회화와 사진, 예술과 상업처럼 서로 유사하지만 분명히 구분되고 있는 갈래를 교묘히 품고 있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의 작업을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갈래를 작업과 작업 사이의 관계 안에서, 작업 내부의 상들 안에서, 색과 색 안에서 찾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그의 익살스러운 비틀기와 집요한 작가정신은 그의 작업 안에 조화롭게 꾸며져 있다. 물론 그가 '컬러의 제왕'인지는 식견이 짧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를 탐미하기에는 충분한 면모를 뿜어내고 있다. 그가 꾸며 놓은 사각의 액자로 떠나는 산책은 꽤나 즐거웠다. 앞으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색들이길 바란다.

 

본 콘텐츠는 비평과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콘텐츠에 사용된 표현과 묘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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